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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영 전 청와대대변인] 집념과 투혼의 휴머니스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시. 2007.12.12 12:00   조회수. 8,608


집념과 투혼의 휴머니스트 - 윤태영 (前 청와대 대변인)

 

그는 언제나 밝은 얼굴 경쾌한 목소리였다. “선배님들, 안녕하세요!” 위층에 근무하던 젊은 청년은 4층 사무실의 열린 문을 통해 출근길 정겨운 아침 인사를 건네고는, 힘차고 부지런한 걸음으로 다시 계단을 올랐다. 엇비슷한 젊은 나이였음에도 4층을 버겁게 오르내리던 나로서는, 5층 계단을 가볍게 훌쩍 뛰어오르며 하루도 빠짐없이 명랑한 분위기를 선물하는 그의 모습에서 신선함을 넘어 부러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젊은 청년 안희정을 처음 본 기억으로 나의 뇌리에 남아있는 구 의원회관 2동 4계단의 1989년 아침풍경이다.

 
그가 얼마 전 팔을 다쳤다. 붕대를 감은 왼 팔뚝을 조심스레 고정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의 사연을 들은 좌중에 일순 웃음꽃이 번졌다. 아들의 학교에서 열린 학부모 축구대회에서 열심히 뛰다가 입은 부상이라는 것. 나는 속으로 웃음을 감추고 말았다. 20년 동안 가까이서 지켜보아온 안희정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난 장면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작든 크든 매사(每事)에 최선을 다해온 모습도 그렇거니와, 그로 인해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이겨내기 위해 다시금 힘겨운 전쟁을 거듭해야 했던 청년.

 
그는 유난히 부상이 많았던 편이다. 기억나는 것만 해도 세 차례가 넘는다. 남달리 몸을 사리지 않는 집념과 투혼을 가질 수 있었던 대가인 것일까? 언젠가는 스쿠터를 몰고 가다 횡단보도에서 미끄러져 빗장뼈가 부러진 그를 병문안하러 간 적이 있었다. 경인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의 소음이 작은 창을 통해 들어와 귀청을 어지럽히던, 부천 외곽의 자그마한 연립주택이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봐야 할 처지의 답답함과 무료함을 덜어주려 간 길이었지만, 오히려 손님 접대를 하겠다며 불편한 몸으로 주방과 안방을 오가는 그의 정성에 먼 길을 온 나의 피로가 말끔히 씻겨나가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그 몸으로 ‘매일 출판사에 출근도 하고 있다’는 말로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고, 자신이 탔던 것은 ‘스쿠터가 아니라 어엿한 오토바이 급’임을 끝까지 강변하여 나를 웃기기도 했다.
 

그는 타고난 살림꾼이었다. 그가 일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사무실 구석구석까지 그의 마음 씀씀이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큰일에 몸 사리지 않았고 작은 일을 쉽게 넘기지도 않았다. 힘든 일은 자신이 먼저 나섰고, 궂은일이나 악역은 결국엔 그의 몫으로 남아 있곤 했다. 타고난 살림꾼, 그것은 결국 타고난 정치인의 품성이었다. 90년대 초의 어느 날, 그가 잠시 거리를 두었었던 정치권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했을 때, 내가 흔쾌히 동의했던 것도 그의 품성이 우리 정치를 새롭게 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가 출판사 영업책임자로 일하고 있을 무렵 나에게 심각한 제안을 했다. “형, 이제 나랑 출판사에서 같이 일합시다.” 편집 파트와 영업 파트에서 각각 열심히 뛰면 비록 우리 회사는 아니지만 뭔가를 이루어내지 않겠냐는 것. 그렇지 않아도 야당 당직자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던 나였기에 그 제안은 새로운 동기 부여가 되었다. 오랜 고민 없이 출판사행을 결정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사실은 거짓말을 했다’는 느닷없는 그의 고백. “형이 여길 와야 내가 마음 놓고 노무현 의원을 모시러 갈 수 있어서....” 그는 특유의 맑은 웃음으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했고 나는 흔쾌히 그를 떠나보냈다. 언젠가는 같은 사무실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일을 하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임을 약속하면서.
 
 
그는 약속을 지켰다. 다시 7-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인 2000년, 16대 총선에서 노무현 의원이 패배한 뒤의 일이었다. 연희동의 작은 찻집에서 만난 그는 ‘이번이야말로 같이 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강조하며 경선 준비 캠프에의 합류를 요청했다. 그로부터 2년여의 기간 동안 우리는 대선 승리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일했고 마침내 성공을 일구어냈다. 하지만 그것을 계기로 그와 나는 또다시 멀리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청와대로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집을 짓는 목수였다. 그 안에 들어가 살지는 못하는 운명을 지닌 목수. 그런 그가 이제 자신의 새로운 집을 짓는 일에 도전한다고 한다. 세상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휴머니스트인 그의 열정을 믿기에 척박하기만 한 우리 정치판 위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질 것으로 믿는다. 그의 투철한 집념과 치열한 투혼이 빚어낼 새로운 정치의 모습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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